엄마 반지 끼워주며, 이혼녀와 약혼한 해리 왕자
미국 배우 메건 마클과 사랑 결실 영국 여왕, 찰스 때와 달리 허락 언론 "왕실이 과거에서 벗어났다" 성공회 최고 성직자가 주례 가능성 해리 "엄마, 이 기쁜날 함께 있었으면 달보다 높이 껑충껑충 뛰었을 것" "틀림없이 달보다도 높이 껑충껑충 뛰어오르셨을 거예요. 아마 메건과도 가장 좋은 친구가 됐을 겁니다. 이렇게 기쁜 날이면 정말 어머니와 함께 있던 때가 떠오릅니다."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릴 것이라고 발표하는 날, 왕자는 장난기 많은 아들들이 왕실에 갇혀 있지 않기를 원했던 어머니 다이애나를 그리워했다. 영국 해리(33) 왕자가 약혼녀인 할리우드 여배우 메건 마클(36)과 내년 봄 결혼 소식을 알리며 27일 BBC와 한 인터뷰에서다. 해리 왕자는 마클에게 청혼하면서 끼워준 반지를 소개했다. 반지에 박힌 다이아몬드 세 개 중 가운데는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캔 원석을 가공한 것이다. 지난해 7월 지인의 소개로 마클을 만난 해리 왕자는 한 달 뒤 보츠와나 캠핑 여행으로 그를 초대했다. 해리 왕자는 "별 아래에서 5일 동안 함께 머물렀는데 정말 환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양옆의 다이아몬드 2개는 다이애나의 소장품에 있던 것이다. 황금색 링과 매치된 이 반지는 해리 왕자가 직접 디자인했다. 해리 왕자는 "우리의 여정에 어머니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어머니의 다이아몬드를 썼다"고 설명했다. 마클도 "뵐 수 없지만 해리를 통해 느끼게 되는 어머니(다이애나)가 우리 결혼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해리의 과거와 우리에게 중요한 보츠와나가 연결돼 있으니 완벽하다"고 말했다. 해리의 형인 윌리엄 왕세손도 약혼하면서 케이트 미들턴에게 다이애나의 반지를 선물했다. 다이애나가 1981년 찰스 왕세자와 약혼하며 받았던 블루 사파이어 반지다. 해리와 마클은 BBC 인터뷰에서 프러포즈에 이르는 16개월간의 러브 스토리를 공개했다. 해리 왕자는 이달 초 자신이 거주하는 켄싱턴궁의 노팅엄 코티지에서 청혼했다. 두 사람은 함께 닭고기구이 요리를 만들고 있었고, 해리 왕자가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마클은 해리 왕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예스'라고 말해도 될까"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마클을 만나기 전 해리 왕자는 그가 출연한 드라마를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였다. 마클에게도 영국 왕실은 머나먼 존재였다. 하지만 해리 왕자는 "마클을 처음 본 순간 별들이 일렬로 빛나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마클은 "해리와 세상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다양한 일들과 세상의 변화를 일으킬 열정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고 소개했다. 마클은 유엔에서 성 평등과 여성 권리 신장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2주일을 만나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로 런던 켄싱턴궁 등에서 사랑을 키워 왔다고 한다. 마클은 결혼 후 배우 활동은 접을 예정이다. 하지만 "뭔가를 포기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과 올바른 장으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마클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등 왕실 가족과 수차례 만났고 윌리엄 왕세손 부부도 이들을 적극적으로 응원했다고 한다. 해리 왕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애완견들이 33년간 나만 보면 짖곤 했는데 마클에게는 꼬리를 흔들었다"는 말도 했다. 마클은 한 차례의 이혼 경력, 또 어머니가 아프리카 출신이란 이유로 해리 왕자와 교제를 시작한 이후 인신공격을 받기도 했다. 당시 마클에 대한 공격을 자제해 달라고 공개 요청했던 해리 왕자는 "우리는 젊은 세대가 세상을 왜곡된 관점이 아니라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독려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로이터를 비롯한 외신들은 특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이혼녀'와의 결혼을 허락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영국 왕실이 과거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혼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일찌감치 달라졌지만 유독 왕실만은 그동안 보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혼에 대한 전통적 가치에 집착하느라 빚어진 스캔들과 비극도 여럿이다. 1936년 미국인 이혼녀 심프슨 부인과의 결혼을 위해 즉위 11개월 만에 동생에게 왕위를 넘긴 에드워드 8세, 53년 16세 연상의 이혼남이자 아버지 조지 6세의 시종무관이었던 피터 타운샌드에게 청혼을 받은 뒤 2년여간 영국 전체가 발칵 뒤집히는 소동 끝에 "결혼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던 마거릿 공주(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동생)가 대표적이다. 96년 찰스 왕세자와 고(故) 다이애나비의 이혼, 이혼녀 커밀라 파커 볼스와 찰스의 재혼 역시 엄청난 스캔들이었다. 찰스와 커밀라의 결혼식은 교회에서 열리지도 못했다. 영국 국교회 수장이기도 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결정 때문이었다. 윈저 시청에서 열린 결혼식에 여왕은 참석하지도 않았고, 결혼식 이후 윈저궁 내 왕실 전용 예배당에서 열린 '축복 예배'에만 참석했다. 영국 국교회가 "교회에서 재혼할 수 있다"고 공식 허용한 건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그마저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라는 조건을 달았다. 영국 왕실 작가인 클라우디아 조셉은 로이터통신에 "여왕은 찰스 왕세자와 커밀라 파커 볼스가 결혼할 때 딜레마에 빠졌을 것"이라며 "찰스 왕세자가 아들인 해리를 위해 길을 터준 셈"이라고 말했다. 가디언은 두 사람의 결혼식 날짜가 확정되지 않았으나 영국 성공회 최고위 성직자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의 주례로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서울=홍주희 기자